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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생각이 나던

raraaviskjh 2008. 12. 1. 00:40

 

내가 기억하기에, 아버지가 우시는걸 처음 본게 할아버지 돌아가시고 장지에서 였다. 물론 장남이시고, 또 할아버지가 돌아가실 때도 우셨겠지만 내가 직접 아버지 눈을 보진 못했었다.

근데 내가 처음 봤던건 그떄가 아니었다. 생각해보니 할아버지 돌아가시기 며칠 전에 처음 봤었다.

 

암으로, 더이상 병원에서 손 쓸수 없는 상황이 되자 할아버지께선 집으로 오셨다. 생각해 보니 그 해 겨울은 참 길고 또 분주했구나.

우리 집에 그렇게 오래동안 수많은 친인척이 다녀 간 경우도 없었고 또 매일 가족들이 할아버지 간호를 하느라 늘 분주했다.

처음 병원에서 퇴원하고 오셨을 때만 해도 다른 때와 별 다름이 없으셨다. 그냥 내 눈에는 어른들이 할아버지가 아프시다고 하니까 그런 줄로만 알았다.

할아버지께서 퇴원하시고 얼마 후부턴 난 할아버지 방에 가 보질 못했다. 글쎄, 뭐 어른들이 가지 말라고 했겠지. 이유는 모르겠지만.

하여튼 한동안 할아버지를 뵐 수 없었고 할아버지 방에 설치한 벨이 울리고 어른들이 할아버지한테 가 보면 아, 할아버지가 부르시는 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을 뿐이다.

그렇게 겨울이 지나가고 구정이 오기 일주일 전에 할아버지께서 돌아가셨는데 아마 그 전부터 할아버지께서 기력이 다 했다는게 어른들한테는 보였나 보다. 하루는 아버지께서 할아버지 방으로 날 부른 적이 있었다.

그 좁은 방에 3대가 그렇게 모여 있었다. 그 전에 큰 집으로 제사 지내러 갈 때 한번 3대만 간 적이 있었는데 내 기억에는 아버지와 할아버지 사이가 그렇게 좋지 않았던거 같아서 그 떄에도 버스에서 나랑 아버지가 같이 앉고 할아버지는 멀리 떨어져 앉아 어린 나에게도 상당히 어색했었는데 할아버지 방에서도 왠지 모르게 어색했다. 근데 그건 좀 달랐다.

모두가 신사라고 부를 만큼 늘 단정함을 잃지 않으셨던 할아버지가 내 눈에도 이젠 시간이 다 되어감을 알 수 있을 만큼 약하고 야위어진 모습에 놀랬고 무엇보다 늘 할아버지와는 사이가 안 좋아보였던 아버지가 옆에서 울고 있는 모습이 너무 어색했다.

누군가의 약한 모습을 보는건 참으로 힘든 일이다. 어쩌면 그나마 정신이 맑으실 때 할아버지께 인사를 하라고 했던 그 자리를 어린 나이에 경험했던게 오히려 더 나았던게 아닌가 싶기도 하다. 뭘 몰랐던 때였으니까.

 

적어도 지금까지는 전혀 그런 적이 없던 아버지가 오늘은 나한테 요즘 속상한 일이 있는데 그걸 말씀하시더라.

그런게 그렇게 마음에 걸린 일이었나 싶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그런 적이 없던 분이 그런 말씀을 하셔서 놀랬다.

아버지도 많이 늙으셨고, 또 많이 약해지셨구나 하는 생각을 하니 문득 예전 저 일이 생각이 났다. 왠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안 그러시던 분이 그러니 조금 걱정되기도 한다. 그러면서도 원래 강하신 분이니 걱정이 안 되기도 한다.

아, 그냥 조금만 여유 있을 수만 있다면 좋겠다.